전자레인지 원리, 물 분자를 공명시킨다는 설명은 틀렸습니다
“물 분자의 고유 진동수에 맞춰 공명시킨다”는 설명은 틀렸습니다.
교과서와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전자레인지가 쓰는 2.45GHz는 물 분자의 공명 주파수가 아닙니다. 물의 첫 공명 봉우리는 1THz 위, 그러니까 수백 배 높은 곳에 있습니다.
만약 정말 공명이었다면 전자레인지는 쓸모가 없었을 겁니다. 이유는 조금 뒤에 나옵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
물 분자는 한쪽이 살짝 양전기, 반대쪽이 살짝 음전기를 띱니다. 작은 자석 같은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전자레인지 안에는 방향이 계속 뒤집히는 전기장이 걸립니다. 물 분자는 그 방향에 맞춰 몸을 돌립니다. 전기장이 뒤집히면 다시 돌아섭니다. 초당 24억 5천만 번 이 일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분자들이 옆의 분자들과 부딪힙니다. 질서 있던 회전 운동이 뒤죽박죽인 운동으로 바뀌고, 우리는 그것을 열이라고 부릅니다. 이 방식을 유전 가열이라고 합니다.
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방과 단백질도 같은 방식으로 데워집니다.
왜 하필 2.45GHz인가
공명이 아니라면 왜 이 숫자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겹칩니다.
하나는 침투 깊이입니다. 이 주파수에서 마이크로파는 음식 속으로 1cm 남짓 들어갑니다. 주파수가 훨씬 높으면 표면만 익히고, 훨씬 낮으면 음식을 그냥 통과해버립니다. 적당히 스며들면서 적당히 흡수되는 지점이 이 근처입니다.
다른 하나는 규제입니다. 통신에 쓰이는 대역을 피해 이 대역이 조리기기용으로 배정돼 있습니다.
공명이 아니라는 근거가 여기서도 나옵니다. 공명이었다면 에너지가 표면에서 전부 빨려 들어가 속은 차가운 채로 남았을 것입니다(관련 설명).
속까지 데워지는 게 아닙니다
전자레인지가 안에서부터 데운다는 말도 흔히 쓰이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파가 닿는 건 표면에서 1cm 정도까지입니다. 그 안쪽은 결국 열이 전달되며 데워집니다. 프라이팬과 원리가 다를 뿐 열이 안으로 들어가는 건 똑같습니다.
두꺼운 음식의 가운데가 차가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시간을 늘리면 겉만 질겨집니다. 차라리 중간에 꺼내서 저어주거나 뒤집는 편이 낫습니다.
회전판이 도는 이유
전자레인지 속 마이크로파는 벽에 부딪혀 반사되면서 서로 겹칩니다. 그러면 세기가 센 곳과 약한 곳이 고정된 무늬처럼 생깁니다.
2.45GHz의 파장은 약 12.2cm이고, 세기가 강한 지점은 대략 6cm 간격으로 놓입니다. 음식을 가만히 두면 어떤 부분은 펄펄 끓고 어떤 부분은 차가운 채로 남습니다.
회전판은 이 무늬를 통과시키려고 음식을 계속 옮기는 장치입니다. 접시를 가장자리 쪽에 둥글게 배치하면 더 고르게 데워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데우기 요령 몇 가지
원리를 알면 요령이 따라옵니다.
접시 가운데를 비우고 음식을 도넛 모양으로 둘러 놓으면 고르게 데워집니다. 가운데가 가장 늦게 데워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밥이나 국은 뚜껑을 살짝 덮는 게 낫습니다. 수증기가 갇히면 그 수증기가 열을 옮겨줍니다. 완전히 밀폐하시면 안 됩니다.
두꺼운 음식은 절반쯤에서 한 번 꺼내 저어주십시오. 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이쪽이 효과가 큽니다. 마이크로파가 1cm 남짓밖에 못 들어가니, 안쪽은 어차피 열이 퍼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왜 겉이 노릇해지지 않을까
전자레인지에 넣은 고기는 색이 그대로입니다. 음식 속 물이 끓기 시작하면 온도가 100도 부근에서 더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릇한 껍질을 만드는 마이야르 반응은 140도가 넘어야 본격적으로 일어납니다. 물이 남아 있는 한 그 온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전자레인지 조리물이 눅눅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냉동식품 해동이 유독 어려운 이유
얼음은 물보다 마이크로파를 훨씬 덜 흡수합니다. 분자가 결정 구조에 갇혀 자유롭게 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 고기를 돌리면 먼저 녹은 부분이 마이크로파를 집중적으로 받습니다. 한 번 녹기 시작한 자리는 더 빨리 데워지고, 그 옆 얼음은 계속 얼어 있습니다. 가장자리는 익어가는데 가운데는 아직 얼어 있는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해동 기능이 약한 출력을 껐다 켰다 하는 방식인 것도 열이 퍼질 시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안전에 관한 오해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는 방사능과 다릅니다.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낼 만한 에너지가 없어 DNA를 직접 손상시키지 못합니다. 라디오파와 같은 종류의 전자기파입니다.
문 안쪽 촘촘한 금속 격자는 장식이 아닙니다. 마이크로파는 파장이 12cm라 이 구멍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빛은 파장이 훨씬 짧아 통과합니다. 그래서 안이 보이면서도 전자기파는 갇힙니다.
영양소 손실도 오히려 적은 편입니다. 조리 시간이 짧고 물을 적게 쓰기 때문입니다. 삶으면 수용성 비타민이 물로 빠져나갑니다.
다만 조심할 것은 있습니다. 껍질이나 막이 있는 것을 그대로 돌리면 안쪽 수증기가 갈 곳이 없어 터집니다. 계란, 밤, 소시지는 미리 구멍을 내셔야 합니다. 금속은 아크가 튀니 넣지 마시고요.
정리하면
전자레인지는 물 분자를 공명시키는 기계가 아니라, 전기장으로 분자를 계속 돌려세워 마찰열을 만드는 기계입니다.
속부터 익히지도 않고, 겉을 굽지도 못하며, 균일하게 데우지도 못합니다. 대신 빠릅니다. 그 한계를 알고 쓰면 실패가 줄어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