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 상한 걸까? 미오글로빈으로 보는 고기 색
냉장고에서 갈색으로 변한 소고기는 상한 게 아닙니다.
물론 상한 고기도 갈색입니다. 다만 갈색이 됐다고 해서 상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둘은 다른 이야기인데 자주 섞입니다. 매년 멀쩡한 고기가 색만 보고 버려집니다.
색이 변하는 원리를 알면 언제 버리고 언제 그냥 구워도 되는지 판단이 섭니다.
고기의 붉은색은 피가 아닙니다
포장 안에 고인 붉은 액체를 핏물이라 부르지만, 사실 피가 아닙니다. 도축 과정에서 피는 대부분 빠져나갑니다.
그 액체는 근육에서 나온 물에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미오글로빈은 근육 세포 안에 자리 잡고 산소를 저장해두는 역할을 합니다. 혈액을 타고 도는 헤모글로빈과는 이름만 비슷하고 하는 일이 다릅니다.
이 단백질 한가운데에 철 원자가 있습니다. 고기 색은 이 철이 어떤 상태이고 무엇과 결합해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색은 세 가지입니다
자주색. 산소가 붙지 않은 상태입니다. 진공포장을 막 뜯었을 때 보이는 그 검붉은 색입니다. 산소 농도가 0.2% 아래로 낮게 유지되면 이 색이 유지됩니다.
선홍색. 산소가 넉넉히 붙은 상태입니다. 정육점 진열대에서 보는 그 색입니다.
갈색. 철이 산화된 상태입니다. 애매하게 적은 산소, 그러니까 0.2%에서 5% 사이에 놓이면 오히려 이쪽으로 갑니다.
산소가 아예 없으면 자주색, 넉넉하면 선홍색, 어중간하면 갈색입니다. 랩이 살짝 뜬 채로 며칠 둔 고기가 갈변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블루밍이라는 현상
진공포장 고기를 뜯어 도마에 5분에서 30분 두면 검붉던 색이 선홍색으로 살아납니다. 산소가 스며들면서 색이 바뀌는 것이고, 업계에서는 블루밍이라 부릅니다.
포장을 뜯자마자 색이 이상하다고 판단하지 마시고 잠깐 두고 보시면 됩니다. 표면 전체가 고르게 바뀌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다진 고기가 겉은 붉고 속은 회갈색인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산소가 안까지 닿지 못한 것뿐입니다.
갈색으로 변해도 먹을 수 있습니다
미국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은 냉장 보관 중 고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정상적인 변화로 설명하며, 그 자체로 상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안내합니다(관련 자료).
업계 연구를 보면 소비자는 갈색 색소가 20%쯤 되면 알아채고, 40%에 이르면 확연히 갈색으로 봅니다. 이 정도면 팔리지 않는데, 영양가는 그대로입니다. 색은 팔기 위한 기준이지 안전 기준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으로 판단하느냐. 냄새와 촉감입니다. 시큼하거나 쿰쿰한 냄새가 나면 버리셔야 합니다. 표면이 미끈거리거나 실이 늘어지듯 끈적이면 그것도 신호입니다. 색만 갈색이고 냄새가 멀쩡하면 대개 괜찮습니다.
마트가 색을 관리하는 방법
붉은색이 곧 매출이다 보니 유통 쪽에서는 색을 관리하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산소를 아주 많이 채워 넣는 포장이 한 방법입니다. 색소가 산소로 포화되니 선홍색이 오래 갑니다. 다만 산소가 많으면 지방이 산패되고 호기성 세균이 자라기 좋아져서, 색은 좋은데 맛은 손해를 보는 맞교환이 생깁니다.
반대로 산소를 거의 빼는 포장도 있습니다. 이때는 자주색으로 유통되고, 소비자가 뜯으면 블루밍으로 붉어집니다.
미국에서는 아주 낮은 농도의 일산화탄소를 쓰는 포장도 씁니다. 색소와 결합해 선홍색을 오래 유지시키는데, 실제 상태보다 신선해 보이게 만든다는 비판이 따라다닙니다.
갈색이 다시 붉어지기도 합니다
고기 안에는 산화된 색소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효소가 있습니다. 도축 후 시간이 지나면 이 능력이 점점 떨어지지만, 남아 있는 동안에는 갈변이 어느 정도 되돌아옵니다.
숙성한 고기가 시간이 지나도 색을 유지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웻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 차이를 보시면 포장 방식이 색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함께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고기마다 색이 다른 이유
미오글로빈은 산소를 많이 쓰는 근육에 많습니다. 오래 버텨야 하는 근육일수록 진해집니다.
소가 가장 진하고 돼지는 옅으며 닭 가슴살은 거의 하얗습니다. 같은 닭이라도 계속 서 있는 다리는 붉고 잘 쓰지 않는 가슴은 흽니다. 나이 든 소가 송아지보다 붉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품종, 운동량, 나이, 사료가 전부 색에 영향을 줍니다. 진열대에서 유독 색이 진한 고기를 보셨다면 상한 게 아니라 그런 소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소 안에서도 부위마다 다릅니다. 목심이나 사태처럼 많이 쓰는 부위는 진하고, 안심처럼 거의 쓰지 않는 부위는 옅습니다. 안심이 연한 이유와 색이 옅은 이유가 같은 데서 나옵니다.
익힌 고기가 분홍색일 때
훈제하거나 그릴에 구운 고기의 겉면 안쪽이 분홍 띠처럼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소 과정에서 생긴 기체가 색소와 결합해 열에도 잘 변하지 않는 분홍색을 만든 것입니다.
햄과 소시지가 익혀도 분홍인 것도 비슷합니다. 아질산염이 색소와 결합해 안정적인 분홍색을 만듭니다.
중요한 건 반대 방향입니다. 색으로 익음을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분홍색인데 충분히 익은 경우가 있고, 갈색인데 덜 익은 경우도 있습니다. 온도계를 쓰시는 게 유일하게 확실한 방법입니다.
정리하면
고기 색은 신선도가 아니라 산소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습니다.
자주색은 산소가 없는 것, 선홍색은 산소가 붙은 것, 갈색은 철이 산화된 것입니다. 셋 다 먹을 수 있습니다. 판단은 냄새와 촉감으로 하시면 됩니다.
색을 다룬 학술 리뷰는 ScienceDirect에서, 굽고 난 뒤의 갈색은 마이야르 반응 쪽에서 보시면 됩니다. 같은 갈색이지만 원리가 전혀 다릅니다.





